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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 정말 믿으십니까? 저는 4년 전 전세금 반환 소송을 직접 겪으면서 그 문장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 수 있는지 뼛속으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는 그 공허함을 정면으로 건드리면서도, 제가 5번이나 다시 보게 만든 몇 안 되는 한국 드라마입니다.

 

첫사랑과 법복 사이 — 12년 만의 재회가 만든 긴장

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 솔직히 등장인물 이름부터 눈에 걸렸습니다. 박차오름, 임바른, 한세상. 범상치 않은 이름들인데, 실제 법원 재판부 구성과 유사한 구조라는 걸 알고 나서는 작명 센스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두 신임 판사의 관계 설정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닙니다. 박차오름과 임바른은 학창 시절 첫사랑이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임 판사로 나란히 첫 출근하는 날 12년 9개월 10일 만에 재회합니다. 여기서 임바른이 취하는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공적 공간에서는 사적 친분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원칙, 즉 직무상 이해충돌 회피(recusal principle)를 몸으로 실천합니다. 여기서 이해충돌 회피란 판사가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에서 스스로를 배제하거나 거리를 두는 원칙으로, 사법부 독립성의 근간입니다.

두 사람이 배치된 재판부를 이끄는 한세상 부장판사는 20년 경력의 베테랑입니다. 학벌보다 재판의 본질을 중시하는 스타일인데, 첫날부터 오름의 행동 하나하나를 법관의 권위 측면에서 엄격하게 질책합니다. 제가 보기엔 이 장면이 드라마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실제 법원도 위계와 관행이 상당히 강하게 작동하는 조직이니까요.

  • 박차오름: 감성과 공감을 앞세우는 이상주의형 신임 판사
  • 임바른: 증거와 법리 중심의 냉정한 현실주의형 신임 판사
  • 한세상: 20년 경력, 학벌보다 재판 본질을 중시하는 마이웨이형 부장판사
요약: 12년 만의 재회라는 설정 위에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충돌이 겹치면서, 드라마는 시작부터 단순한 법정 로맨스 이상의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정의관의 충돌 — 감정이냐, 법리냐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법원 앞 시위 할머니 에피소드입니다. 오름은 그 할머니의 사연에 감정적으로 공명하고, 바른은 증거와 법리에 입각한 냉정한 판단이 판사의 본분이라고 맞섭니다. 이 충돌은 사실 드라마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4년 전 저도 법원을 여러 번 다녔습니다. 임차인이 임대인을 상대로 전세보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건의 당사자로서였습니다. 당시 제가 체감한 것은 명확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당사자 본인 소송(pro se litigation) — 쉽게 말해 법률 전문가 없이 본인이 직접 소송을 진행하는 방식 — 은 실질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입니다. 내 사건은 변호사 수임 사건에 밀리고, 대기 시간은 길고, 처리는 소극적이었습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의 선언이 그날만큼 공허하게 들린 적이 없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 대한민국헌법).

드라마는 이 간극을 직장 내 성희롱 해고 무효 소송 에피소드에서 더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오름과 바른은 회사가 사건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부장의 권력형 성희롱 사실을 밝혀냅니다.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실질적 증거법칙(substantial evidence rule)입니다. 여기서 실질적 증거법칙이란 단순히 서류상 증거만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자가 해당 결론을 지지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를 따지는 기준입니다. 피해자가 오랜 시간 참아온 진술이 그 기준을 채울 수 있느냐가 드라마의 핵심 긴장이었습니다.

바른이 밤새 오름의 상속 지분 계산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냉정한 원칙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가장 구체적인 방식으로 동료를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오히려 현실 법원이 떠올랐습니다. 원칙은 있되, 사람을 향한 온도가 없는 공간.

요약: 감정적 공감과 법리적 냉정함의 충돌은 드라마의 가장 강한 축으로, 제가 직접 겪은 법원 경험과 맞닿아 있어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현실 법원 — 드라마가 끝나도 남는 씁쓸함

드라마 후반부에 오름은 전체 판사 회의를 소집하기 위해 연판장을 돌립니다. 성공충 부장판사의 인권 침해와 배석 판사들의 과로 문제를 공식 의제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회의에서 그녀는 말합니다. 누군가를 돕는 보람으로 일할 수 있는 법원을 만들자고.

솔직히 이 장면에서 저는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허탈했습니다. 현실에서 저런 판사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법원의 민사 1심 처리 건수는 약 310만 건에 달합니다(출처: 대법원 사법연감). 이 숫자 속에서 개별 사건 당사자가 판사에게 "들렸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드라마 마지막 축인 '잊혀질 권리' 소송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란 개인이 자신과 관련된 정보의 삭제나 유통 차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유럽연합(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제17조에서 처음 법제화된 개념입니다. 이 사건이 드라마 안에서 단순한 알 권리 대 잊혀질 권리의 충돌이 아니라, 아내를 위해 첫사랑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던 남편의 슬픈 의무로 풀린다는 점이 탁월했습니다. 바른이 이 사건을 해결하며 오름에게 감정을 고백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드라마가 내내 이야기해 온 "감정을 지우는 것과 감정을 인정하는 것 사이"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5번 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볼 때마다 다른 장면에서 현실이 겹쳐 보입니다. 지금은 4년 전보다 법원 환경이 개선됐다고들 하는데, 제 경험상 구조적인 변화는 여전히 더딥니다. 소송 안 당하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자조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만, 현실은 아직 그렇습니다.

요약: [미스 함무라비]는 이상적인 법원을 그리지만, 그 이상이 선명할수록 현실과의 간극이 더 또렷하게 느껴지는 드라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미스 함무라비 몇 부작이고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총 16부작으로 2018년 JTBC에서 방영됐습니다. 현재는 넷플릭스와 일부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제가 5번 본 작품인 만큼, 한 번 시작하면 연속 시청하게 되는 구성입니다.

 

Q. 변호사 없이 본인 소송(나홀로 소송)하면 실제로 불리한가요?

A. 법적으로는 동등한 당사자이지만, 실무상으로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변호사 수임 사건이 먼저 처리되는 경향이 있었고, 법률 용어나 절차에 익숙하지 않으면 불리한 진술을 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소액사건이나 단순 사건은 본인 소송이 가능하지만, 금액이 크거나 쟁점이 복잡하면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Q. 잊혀질 권리가 한국에서도 법적으로 인정되나요?

A. 유럽연합(EU)처럼 명시적으로 법제화되지는 않았지만, 개인정보 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을 통해 부분적으로 인정됩니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 결과 삭제 요청 등이 실제 적용 사례입니다. 다만 표현의 자유, 알 권리와의 충돌 문제로 범위는 제한적입니다.

 

Q. 드라마에서 한세상 부장판사 캐릭터가 실제 법원 문화를 반영하나요?

A. 위계와 관행을 중시하는 법원 내부 문화는 실제로 존재하는 특성입니다. 한세상 캐릭터가 냉철하면서도 나름의 원칙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는 방식은, 현실의 법원이 제도적 권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꽤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평이 많습니다. 물론 드라마적 과장은 있습니다.

 

결론

[미스 함무라비]를 다섯 번 보면서 매번 다른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처음엔 드라마로 봤고, 두 번째엔 제가 겪은 법원 경험이 겹쳐 보였고, 세 번째부터는 이 나라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잣대 삼아 보게 됐습니다. 제 경험상 현실은 아직 드라마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가치 있는 이유는, 이상적인 판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이상이 왜 어려운지를 솔직하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박차오름 한 명이 모든 것을 바꾸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라마는 조용히 남깁니다. 아직 법원을 경험하지 않으신 분이라면 이 드라마를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제도를 이해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출처: https://youtu.be/fiJyDn9OrM8?si=ZApCUGVqnzxkfi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