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드라마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자꾸 장면들이 떠오른다면, 그 드라마는 뭔가 제대로 건드린 겁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결말이 저한테는 딱 그랬습니다. 전공의 시절을 보내고 대형병원 필수과에서 일하다 사직한 입장에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힐링물이 아니었습니다. 20년 전 제가 살았던 시간들이 거기 있었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였습니다.

 



의료 판타지라 불러도, 팩트는 팩트다

슬의생을 두고 "판타지 드라마"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도 그 말에 반은 동의합니다. 그런데 반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드라마에서 석형이 생존 확률이 낮은 환자의 태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임상 현장에서는 이런 판단을 고위험 산모 관리, 즉 고위험 산모 프로토콜(High-Risk Obstetrics Protocol)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고위험 산모 프로토콜이란, 산모와 태아 모두 생명의 위협이 있을 때 의료진이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두고 어떤 순서로 처치할 것인지 사전에 정해놓은 의사결정 체계를 말합니다. 제가 필수과에서 일하던 시절, 이런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극적이지 않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습니다.

익준이 아들을 데리고 출근하다 우연히 응급환자를 발견해 구급차에 동행하는 장면도, 저는 웃으면서 봤습니다. "저거 판타지가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요. 전공의 때는 정말 그렇게 살았습니다. 퇴근 중에 사고 현장 지나치면 멈추게 됩니다.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드라마에서 준완이 보낸 반지가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되며 장거리 연애에 위기가 오는 장면, 익준이 묻지마 폭행으로 입원한 뒤 송아가 오랫동안 숨겨온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 미나의 끈질긴 짝사랑이 석형에게 닿는 결말까지. 관계의 서사는 충분히 현실적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주니어 스탭들끼리 병원 복도에서 나누는 감정의 밀도는 그 드라마 안에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간이식 수술 비용이 30만~50만 달러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출처: NCBI, Liver Transplantation). 드라마에서 익준이 지방 병원과 협력해 장기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배경에 건강보험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 덕분에 중증 수술 환자의 본인 부담률이 미국 대비 현저히 낮다는 건 팩트입니다(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그 구조 안에서 의사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요.

  • 석형의 고위험 산모 판단: 생존 확률보다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핵심
  • 익준의 응급 동행: 의무가 아닌 몸에 밴 반응, 전공의 시절과 다르지 않음
  • 장기 이식 수술 성공: 한국의 건강보험 체계가 뒷받침하는 현실 기반
  • 5인방의 관계 서사: 병원 내 인간관계의 밀도, 판타지가 아닌 실제 온도
요약: 슬의생을 판타지로만 보기엔 아깝습니다. 과장된 부분이 있어도, 의사로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들과 포기하지 않는 판단은 제가 실제로 살았던 시간과 겹칩니다.

방어진료가 일상이 된 지금, 그래서 더 아프다

석형이 태아를 살리지 못한 산모에게 보낸 문자 장면,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이 한 줄이 저한테는 단순한 명대사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현실에서는, 그 문자를 보내기 전에 법무팀에 연락하는 게 먼저입니다.

방어진료(defensive medicine)라는 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의사가 환자에게 최선인 치료보다 소송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먼저 결정을 내리는 진료 형태입니다. 제가 일하던 시절, 중증 환자 입원 요청이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DNR 서명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DNR(Do Not Resuscitate)이란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적극적 소생술을 거부하는 사전 동의서인데, 본래는 말기 환자의 존엄사 선택권을 위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의료진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방패막이로 먼저 쓰이는 경우가 솔직히 적지 않았습니다.

살리면 본전, 죽으면 억대 소송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돌았는데,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응급실 풍경은 드라마와 꽤 달랐습니다. 술에 취해 넘어져서 팔뼈가 부러진 환자가 아프다고 하는데, 전문의가 "주취 환자들이 제일 싫다"고 옆에서 말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폭행을 한 것도, 난동을 부린 것도 아닌 환자였습니다. 간 수치 300이 넘는 환자에게 C8 수치 보고도 우루사 처방만 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의사 가운을 입었다고 해서 모두 드라마의 석형이나 익준이 아닙니다.

슬의생을 "착하고 잘나가는 친구들의 비현실적인 드라마"라고 보는 시각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그 말에 절반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이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보호자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장면, 로사가 수두증과 파킨슨 초기 의심 증상으로 입원했을 때 정원이 곁에 있어준 장면. 수두증(Hydrocephalus)이란 뇌척수액이 비정상적으로 뇌 내부에 축적되어 뇌압이 높아지는 질환으로, 인지 기능 저하나 보행 장애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저런 환자 곁에 저렇게 머무는 의사가, 지금 현실에서는 얼마나 있을까. 제 경험상 이건 솔직히 드물었습니다. 드물었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송아가 유명 뮤지션 유경진의 수술을 집도할 때, 젊다는 이유로 무시하던 보호자가 결국 신뢰를 보내게 되는 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20년 전에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그런 신뢰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알아주는 구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구조가 많이 무너졌고, 의사도 환자도 서로를 먼저 방어 대상으로 보게 된 것 같아서 그게 제일 안타깝습니다.

요약: 드라마의 따뜻한 의사들이 판타지처럼 보이는 건, 현실의 방어진료 구조가 그만큼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더 필요하고, 더 아픕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결말, 5인방 다 해피엔딩인가요?

A. 큰 틀에서는 그렇습니다. 미나와 석형의 짝사랑이 결실을 맺고, 정원과 겨울은 공식적으로 연애를 시작하며, 송아는 익준이 입원한 병실에서 마음을 고백합니다. 다만 준완과 익순의 관계는 장거리 연애의 오해와 이별, 그리고 아픔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어, 모든 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된다기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하는 결말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Q. 슬의생이 의료 판타지라는 비판, 어떻게 생각하나요?

A. 판타지라는 말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반론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전공의 시절을 실제로 경험한 입장에서 보면, 응급 환자에게 몸이 먼저 반응하거나 동기들끼리 치료법을 밤새 상의하던 장면들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현재의 방어진료 환경과 의사-환자 간 신뢰 구조를 생각하면, 저런 관계와 헌신이 지금도 자연스럽게 가능한 환경인가라는 질문에는 솔직히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습니다.

 

Q. 슬의생 시즌3는 제작되나요?

A. 공식적으로 확정된 소식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처럼 장기 시리즈로 이어지길 바라는 팬들이 많다는 건 사실이고,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다만 제작 여부는 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하시는 것이 정확합니다.

 

Q. DNR 서명이 드라마에서 다뤄지나요?

A. 드라마에서 직접적으로 DNR을 소재로 다루지는 않지만, 생존 확률이 낮은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석형의 결정 장면이 그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DNR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위한 중요한 제도이지만, 제가 직접 경험한 현장에서는 의료진 보호 목적으로 먼저 활용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점에서 드라마와 현실의 온도 차이가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결론

응답하라 시리즈 이후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저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첫 번째로 답할 것 같습니다. 낭만닥터 김사부도 좋아하지만, 슬의생은 결이 다릅니다. 자극이 아니라 온도로 기억되는 드라마입니다.

충분히 흉흉한 세상에서, 인류애를 다루는 드라마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타지라는 걸 알면서도, 저 같은 전직 의사도 끝까지 다 보았습니다. 그게 이 드라마의 힘입니다. 아직 안 보신 분이라면 시즌1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전마이도 누나의 동글동글 안경은, 진짜 레전드입니다.

 

출처: https://youtu.be/dbPkAAMDEnM?si=UYfTvLTNQIdn1ZRP

🔥시즌2 가져왔습니다!!🔥흩어지면 의사! 뭉치면 돌+I인 눈물 콧물 다 빼는 핵꿀잼 드라마!! 결말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