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엔 별 기대 없이 틀었습니다. 방송국 아나운서 로맨스라길래 흔한 직장물이겠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주인공에게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는 설정이 나오는 순간, 리모컨을 내려놨습니다. 신혜선 배우가 두 인격을 오가며 보여주는 연기가 예상을 훌쩍 넘었고, 대사 한 줄 한 줄에 무게가 있었습니다. 다 보고 나서는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뭔지 이해가 됐는데,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아쉬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습니다.

 

스토리 구조: 방송국 로맨스 뒤에 숨겨진 것

이 드라마가 단순한 직장 로맨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서하에게 '해리'라는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입니다. 여기서 해리성 정체성 장애(DID,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란, 한 사람 안에 둘 이상의 독립적인 인격이 존재하며 상황에 따라 교대로 나타나는 정신건강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한 행동인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서하는 새벽 4시마다 인격이 교체되어 '해리'로 살아갑니다. 해리는 아나운서 주연을 짝사랑하고, 주연의 위기 상황에서 그를 구하며 호감을 얻기도 합니다. 서하 본인은 이 모든 사실을 모른 채 잃어버린 기억에 혼란스러워합니다. 제가 이 설정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해리가 단순한 '또 다른 나'가 아니라 서하가 어린 시절 잃어버린 동생 혜리를 내면에서 살려내려 한 결과였다는 점입니다.

드라마는 이 심리적 배경을 꽤 정성스럽게 짜놨습니다. 부모를 일찍 잃고 동생마저 사라진 후, 서하가 동생인 척 '해리'로 살아가려 했던 시도가 DID의 발병 계기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방송국 내 만연한 성차별과 인격 모독이 더해지며 증상이 악화됩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가 단일 사건이 아닌, 누적된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이 설정은 실제 임상 맥락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미국정신의학협회(APA)의 DSM-5 진단 기준에 따르면 DID는 반복적이고 심각한 심리적 외상과 높은 연관성을 보입니다(출처: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다만 저는 이 부분에서 드라마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설정 자체는 탄탄한데, 인격 교체가 일어나는 장면들이 너무 갑작스럽게 처리되어 시청자 입장에서 따라가기가 버거웠습니다. 인격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대사로 설명해 주는 방식이 반복되다 보니, "이 장면이 서하야, 해리야?"를 계속 되짚어가며 봐야 했습니다. 작가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분명히 있었는데, 그걸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기술적인 부분이 조금 더 촘촘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 해리성 정체성 장애(DID): 한 사람 안에 두 개 이상의 독립적 인격이 존재하며, 심각한 반복 외상과 연관
  • 서하의 DID 발병 계기: 동생 혜리의 실종 + 방송국 내 반복적 정신적 압박이 누적된 결과
  • 인격 교체 주기: 새벽 4시마다 서하↔해리가 교대되는 설정으로 극적 긴장감 형성
  • 드라마의 한계: 인격 교체 장면의 연출이 성기게 처리되어 서사 몰입도가 떨어지는 구간 존재
요약: 서하의 DID는 단순한 소재적 장치가 아닌 심리적 외상의 서사적 결과물이지만, 연출 방식의 한계로 전달력이 아쉬웠습니다.

 

신혜선과 주연: 연기와 캐릭터가 드라마를 살렸다

이 드라마를 끝까지 붙잡고 본 이유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솔직히 저는 신혜선 배우 때문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서하와 해리, 두 인격을 오가는 연기를 보면서 "아, 이 배우가 이 역할을 위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인격이 교체되는 순간의 표정 변화, 말투의 온도 차이가 섬세해서 대본이 다소 아쉬워도 화면 안에서 충분히 메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보면서 내내 이상하게 주연이라는 캐릭터를 더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남주인공 현우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현우는 마음이 넓고 서하를 위해 9시 뉴스 앵커 자리까지 포기하는 사람이고, 주연은 이해심이 넓어 해리와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이 둘의 차이가 뭔지 생각해 봤는데, 마음이 넓은 것과 이해심이 넓은 것은 비슷해 보여도 결이 다른 말입니다. 전자는 '용납'에 가깝고 후자는 '수용'에 가깝습니다. 주연이 해리에게 마음을 여는 방식이 훨씬 더 능동적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더 애틋했습니다.

제가 직접 하이라이트 영상들을 챙겨봤는데, 해리가 주연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은 정말 절절했습니다. "좋은 이별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마주해야 한다"는 대사는, 사실 서하 자신이 과거의 상처와 작별하는 방식이기도 했으니까요. 이 장면에서 드라마가 하고 싶었던 말의 핵심이 가장 잘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강훈 배우가 연기한 주연 캐릭터도 예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신혜선과 강훈, 두 배우의 조합이 실제로 잘 맞았고, 길쭉한 비율까지 화면에서 잘 어울렸습니다.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조합입니다. 한편, 아나운서와 방송국 시스템에 대한 묘사도 눈에 걸렸습니다. 타 방송국 소속이라 서로 얼굴을 모른다는 설정이나, 새벽 라디오를 맡은 아나운서에게 오후 4시 생방송까지 부여하는 과부하 구조는 방송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를 반영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국내 방송업계의 아나운서 근로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출처: 한국방송협회).

결국 이 드라마는 서하가 '은우'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에서의 치료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인격 통합(integration), 즉 분리된 인격들이 하나의 자아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인데, 드라마는 이를 해리와의 '이별'이라는 형태로 풀어냈습니다. 여기서 인격 통합이란 다른 인격을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합니다. 서하가 해리가 있었던 시간들을 '좋은 시간'으로 기억하며 살아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마무리는, 그 의미에서 꽤 정확한 방향을 짚었다고 봅니다.

요약: 신혜선의 연기가 아쉬운 서사를 받쳐줬고, 주연 캐릭터의 매력이 예상 밖으로 강해서 서브남주를 응원하게 되는 드라마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해리성 정체성 장애(DID)가 실제로 새벽 4시마다 인격이 바뀌는 식으로 나타나나요?

A. 실제 해리성 정체성 장애에서 인격 교체는 특정 시간에 고정되어 일어나기보다, 스트레스나 특정 자극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경우가 더 일반적입니다. 드라마의 새벽 4시 교체 설정은 극적 장치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실제 DID는 훨씬 복잡하고 개인마다 패턴이 다릅니다.

 

Q. 이 드라마에서 신혜선 배우가 맡은 역할이 두 개인가요?

A. 엄밀히는 한 인물 안의 두 인격입니다. 신혜선 배우는 낮의 아나운서 서하(본명 은우)와, 새벽 이후 나타나는 또 다른 인격 해리를 모두 연기했습니다. 두 인격의 말투와 표정, 태도 차이를 배우 혼자서 소화해야 하는 고난도 역할이었습니다.

 

Q. 주연(강훈)과 해리의 관계는 결말에서 어떻게 마무리되나요?

A. 해리는 주연에게 좋은 이별을 하자고 말하며 작별을 고합니다. 자신을 아껴주고 찾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입니다. 서하는 해리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은우라는 본래 이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저는 이 장면이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드라마 전체가 어렵고 복잡한 편인가요?

A. 솔직히 말씀드리면, 중반부 이후 인격 교체 장면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가 겹치면서 흐름을 놓치기 쉬운 구간이 있습니다. 저도 몇 장면은 다시 돌려봐야 했습니다. 본편 전체보다는 유튜브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먼저 핵심 감정선을 파악한 뒤 보면 훨씬 수월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이 드라마는 신혜선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훨씬 아쉬운 작품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소재를 방송국 로맨스와 엮어낸 시도 자체는 신선했고, 작가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도 충분히 읽혔습니다. 다만 그걸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서사 기술이 조금 더 촘촘했으면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됐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서브남주를 응원하며 끝까지 봤다는 게 어쩌면 이 드라마에 대한 저의 가장 솔직한 리뷰일 것 같습니다. 강훈-신혜선 조합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으니, 이 두 배우가 다른 작품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꼭 챙겨보실 것을 권합니다. 유튜브 하이라이트부터 먼저 보시면 드라마의 감정선이 훨씬 빠르게 잡힙니다.